'김미경식 힐링'은 끝났다

정원식 기자 2013. 3. 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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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강사가 추락했다. 스타 강사 김미경씨는 성공의 정점에 서 있었다. 스물아홉살에 강사의 세계에 뛰어든 후 20년 사이에 시간당 2만원을 받던 풋내기 강사는 한 번 강의에 3000만원을 받는 베테랑 강사가 됐다. 2009년 첫 책 < 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 를 출간했을 때 그는 이미 국내 최고의 기업교육 전문강사로 알려져 있었다.

기업교육 분야의 스타 강사를 '국민강사'로 만든 것은 방송이다. 특히 tvN < 스타특강쇼 > 와 같은 방송 < 김미경쇼 > 가 결정적이었다. 그가 누렸던 대중적 인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3월 14일 방영된 < 무릎팍도사 > '김미경' 편이다. 진행자 강호동씨의 복귀 후 고전을 거듭하던 < 무릎팍도사 > 는 그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며칠 후 인문학 폄하 발언 논란과 논문 표절 의혹 논란이 잇따라 터지면서 김씨는 < 김미경쇼 > 에서 하차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정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그의 추락을 언론에 의해 개인적 흠결이 드러난 한 공인의 경력이 치명상을 입은 사건으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석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으로 tvN < 김미경쇼 > 에서 하차한 스타강사 김미경씨./스포츠경향 자료사진 산업화 초기 자기계발 담론 닮아 '퇴행적'

김미경씨를 전국구 스타로 만든 것은 지난해 우리 사회에 휘몰아쳤던, 그리고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멘토 열풍과 힐링 열풍이다. 김씨는 '독설 멘토'였다. 김난도 교수나 혜민스님 같은 이들이 '위로'를 말할 때 김씨는 '독설'을 퍼부었다. 다른 이들이 '아파도 네 탓이 아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센 힘이 끝까지 매달려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결핍을 꿈의 재료로 삼아 맹렬하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높은 수위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직설적이고 화끈한 그의 이런 스타일에 대중이 반응했고, 방송이 주목했다. 김미경씨는 애초 tvN < 스타특강쇼 > 의 출연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김씨의 인기가 고공행진하자 프로그램을 통째로 맡겼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 김미경쇼 > 는 < 스타특강쇼 > 가 이름과 포맷만 일부 바꾼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김미경 식의 독설은 퇴행"이라고 말했다. 힐링은 산업화의 결과 발생한 개인의 피로를 달래주는 것인데, 김미경 식의 독설은 거꾸로 성공을 강조하는 산업화 초기의 자기계발 담론을 닮았다는 얘기다. 김미경씨는 강연과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라며 "꿈은 결핍한 사람이 이룬다"고 강조해 왔다.

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교수(사회학)는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독설과 위로는 자기계발 담론의 양면인데, 김미경씨에 대한 열광은 자기계발 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에 대한 스타덤이 형성되는 징후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형성된 자기계발 담론은 1990년대에 한국에 들어왔다. '자기경영'을 내세운 공병호씨나 '변화경영'을 내세운 구본형씨는 이 분야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저술가들이다.

그러나 이들 책의 독자나 강연 참석자들이 김미경씨의 경우처럼 팬덤에 가까운 지지도를 보여주진 않았다. "미국에서는 현대 경영의 구루(스승)로 불리는 톰 피터스나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의 저자 스티븐 코비 같은 사람들을 마돈나 같은 대중연예인과 비슷한 스타로 본다. 이들의 강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공연)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쇼를 하는 방식이 나타난 것이다. 자기계발 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엔터테이너로 변하고 있다."

적극적인 몸동작과 강렬한 표현 등 엔터테이너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에서 김미경 식 힐링은 김난도 교수나 혜민스님과는 확연히 다르다.

저술과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힐링전도사가 된 김난도 교수 / 김석구 기자

자기계발은 몇몇 개인이 만들어내는 열풍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산업이다. 자기계발 문화의 열쇳말은 '긍정'이다. 성공학·동기유발·힐링·독설 등 여러 형태로 변주를 거치기는 하지만, 자아를 위로하는 담론이든 성실성을 채찍질하는 담론이든, 자기계발 문화의 근저에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긍정적 사고다.

대표적인 힐링멘토 혜민스님 / 이상훈 기자달리 말하면, '생각이 문제다. 생각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생각은 교정될 수 있다'는 세계관이 자기계발 문화의 저류에 깔려 있다.

2007년 6월 국내에 출간돼 200만부 넘게 팔린 론다 번의 < 시크릿 > 이 대표적이다. < 시크릿 > 의 핵심어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저자는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보는 과정을 반복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온 우주가 그 꿈을 이루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칼뱅주의 반발로 생겨난 '긍정적 사고' 담론

연구자들은 이런 세계관의 뿌리를 미국 개신교의 역사에서 찾는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자기계발 문화를 비판한 < 긍정의 배신 >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책에서 '긍정적 사고' 문화는 19세기 중반 엄격한 금욕과 고강도 노동을 강조하는 칼뱅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출현했다고 지적했다. 신대륙 미국에서 칼뱅주의 신학은 즐거움을 죄악시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한 자기 절제를 강조했는데, 이러한 금욕문화가 중산층과 여성들 사이에 신경쇠약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반발로 분노나 의심 같은 부정적 사고를 금기시하는 긍정적 사고 담론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의 20세기 버전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노먼 빈센트 필의 < 적극적 사고방식 > 이란 책이다. 빈센트 필은 이렇게 말한다. "성공한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그림이 지워지지 않도록 마음에 확실히 각인시켜라." "자신의 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상쇄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소리내어 말해보라." < 시크릿 > 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소장은 '긍정의 신학'에 주목한다. 김 소장은 < 녹색평론 > 2013년 3∼4월호 좌담 '힐링과 멘토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대형교회의 치유목회론은) '성공을 위한 자기관리'라는 차원과 다른 한편에 '실패의 위기를 견디는 자기관리'라는 차원을 갖는다. 전자가 '자기계발 신앙'의 차원이라면, 후자는 '힐링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치유목회론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숱한 자기계발 신앙서적과 힐링 서적들이 쏟아져나왔다." 조선일보는 3월 16일 김미경씨와의 인터뷰에서 "(강연이 진행된) 강당 안 풍경은 종교 부흥회 같았다"라고 썼는데, 김씨는 2010년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미국 목회자의 설교 동영상을 보다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자기계발 문화는 자아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한다. 상처받은 개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말이든, 정글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말이든 자기계발 담론에서는 모든 문제해결의 중심에 개인을 둔다. 개인간의 연대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자기계발서나 자기계발 강연의 공통된 특징이다.

서동진 교수는 "'자신을 찾아라' '개성을 발휘하라' 같은 말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자기계발 문화가 개인을 집단으로서의 노동자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노동자로 보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에서 개인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린다"고 말했다.

여성커뮤니티 '82쿡닷컴'의 한 회원은 3월 17일 이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김미경씨 관련 글의 댓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호불호를 떠나 그 정도 성공했으면 직장에 출근하면서 독하게 애를 떼놓지 못하는 엄마들을 다그치는 건 그만하고 CEO들에게 직장에 유아원을 좀 많이 만들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 위치는 된 것 같은데 언제까지 여자는 강해야 된다고 부르짖을 건지…. 사회구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조금 씁쓸해요."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시대의 불안과 개인들의 좌절이 지금 우리 사회의 자기계발 문화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 녹색평론 > 좌담에서 "지금까지는 힐링이라는 미묘한 언어로 미봉해 왔지만, 이것이 솜사탕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될 거라고 본다. 물론 종교 출판·미디어 시장은 모양을 바꿔서 또 다른 유행으로 나아가겠지만 변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견해도 있다.

일자리가 부족한 현재의 경제구조에서 청년층의 열정이 착취당하는 문제를 지적한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공저자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사람들이 뭔가 지침으로 삼을 만한 걸 좇다보니 힐링이든 독설이든 '저 사람이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인가보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독설이 지겨워지면 또 다른 트렌드를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동진 교수는 "미국에서는 에런라이크 같은 기성세대가 자기계발 문화의 문제점을 비판했다면, 한국에서는 청년층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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